이제 일상이 되어버린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은 불과 이십여년전만 해도 생소한 것들이었다. 1990년대 초반,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모체는 PC통신과 호출기(일명 '삐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그것도 지금의 인터넷이나 휴대전화처럼 광범위하게 남녀노소 누구나 사용하던 것은 아니었다.
1993년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1학기말, 과제물 전시회에서 전시할 판넬 전체를 컴퓨터로 작업해 프린터로 출력한 학생은 과에서 내가 유일했다. 대학생 군사훈련의 혜택이 사라진 직후 입학한 탓에 30개월을 꼬박 복무하고 제대를 하니 복학하기 전에 한 학기 정도 여유가 생겼고, 이 기간 동안 CAD학원을 다니며 AutoCAD와 3D Studio라는 프로그램을 배울 수 있었다. 다른 학우들이 판넬에 들어갈 이미지를 마커로 멋지게 렌더링 하고 있을 때, 나는 486 컴퓨터로 DOS에서 실행되었던 3D Studio로 모델링을 했다. 당시엔 3D 프로그램을 사용할 줄 아는 친구들이 얼마되지 않았고, 그나마 3D로 렌더링을 한 친구들 역시 판넬에 들어가는 문구는 칼라이즈(판박이)를 충무로에서 만들어 온 후 판넬에 입히는 작업을 했다. 헌데 다음 학기가 되니 판넬에 수작업을 한 학우들이 거의 없었다. 몇 개월 안되는 사이에 많은 학우들이 디자인 작업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공부하면서 이를 작업에 활용했고, 학교에서도 컴퓨터와 프린터 등 작업에 필요한 기기를 상당수 갖춰 놓았기 때문이었다.
MARK RANDALL의 MARKER RENDERING
EMRE HUSMEN의 PHOTOSHOP RENDERING
이제 디자이너의 책상에서 마커와 색연필, 색지가 사라지고 있다. 마커가 종이 위에 미끄지면서 내는 다양한 소리들, 연필의 사각거림, 파스텔과 섞어쓰던 파우더의 냄새는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처음 화실에 들렀을 때 맡았던 4B연필의 향내처럼 기억의 흔적이 되어 가고 있다. 이제는 그 자리를 컴퓨터와 타블렛, 스캐너와 프린터가 차지하고 있다. 아이디어 스케치에는 여전히 펜과 종이만한 도구가 없어 보이지만, 그 외의 것들은 디지털 기기들과 소프트웨어가 그 효용가치를 대체하고 있다.
디자이너들만큼 디지털 기기와 친숙한 이들도 없을 것이고, 디자이너들만큼 디지털 기기에 예속되어 살아가는 이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디지털 기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료할 수 있는 디자인 분야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아이디어 스케치 마저 연필과 종이 엇비슷한 질감이 나는 타블렛으로 작업이 가능하다. 화면 위에 바로 그림을 그리는 듯한 커다란 LCD 타블렛 역시 머지 않아 디자이너에겐 must have item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종이와 필기구를 대체하고 있는 디지털 기기 중 하나인 LCD Tablet
포토샵이 그다지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 생각난다. 지금은 상상하기 쉽지 않지만, 당시 포토샵이나 일러스트 같은 프로그램은 맥킨토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으며, 삽입된 이미지 위치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편집 프로그램 역시 매킨토시 어플리케이션이었던 쿽익스프레스 정도가 유일했다. (사족을 붙이자면, 맥킨토시로 대표되는 애플 PC의 역사에 어도비가 큰 몫을 했음이 분명한데, 요즘 잡스 선생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어도비를 대외적으로 까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개인적으로 잡스 선생이 좀 지나친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위와 같은 시절을 거친 디자이너 중에는 디지털 도구 속으로 사라져버린 필기구들의 다양한 촉감, 손맛을 그리워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도구는 늘 진화하기 마련이고, 그러한 도구의 진화에 따라 결과물 역시 진화해 왔다. 포토샵을 모르던 시절엔 이미 완성된 이미지나 사진을 손본다는 것이 여간 골치아픈 일이 아니었다. 3D 프로그램이 없던 시절엔 다양한 각도에서 제품을 보여주려면 일일이 손으로 렌더링을 해야 했으며 렌즈의 광각 조정을 통한 퍼스펙티브의 연출 같은 것도 불가능 했다. 디자인한 제품이 작동되는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연출해 보여준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새로운 도구들은 새로운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새로운 도구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물러나는 옛도구들 중엔 애착이 남아 아쉬운 것들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도구들은 굳이 치우지 말고, 새로운 도구와 함께 잘 활용하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상상력을 발휘하면 그 어떤 도구라도 새로운 도구들과 함께 새로운 효용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다.
위와 같은 시절을 거친 디자이너 중에는 디지털 도구 속으로 사라져버린 필기구들의 다양한 촉감, 손맛을 그리워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도구는 늘 진화하기 마련이고, 그러한 도구의 진화에 따라 결과물 역시 진화해 왔다. 포토샵을 모르던 시절엔 이미 완성된 이미지나 사진을 손본다는 것이 여간 골치아픈 일이 아니었다. 3D 프로그램이 없던 시절엔 다양한 각도에서 제품을 보여주려면 일일이 손으로 렌더링을 해야 했으며 렌즈의 광각 조정을 통한 퍼스펙티브의 연출 같은 것도 불가능 했다. 디자인한 제품이 작동되는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연출해 보여준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새로운 도구들은 새로운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새로운 도구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물러나는 옛도구들 중엔 애착이 남아 아쉬운 것들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도구들은 굳이 치우지 말고, 새로운 도구와 함께 잘 활용하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상상력을 발휘하면 그 어떤 도구라도 새로운 도구들과 함께 새로운 효용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다.
New BMW Vision Concept Car - Design Animation
(동영상 출처 : http://www.youtube.com/watch?v=N5Ul3JyypCw&feature=fvw )
(동영상 출처 : http://www.youtube.com/watch?v=N5Ul3JyypCw&feature=fvw )
이젠 디자이너가 아닌 일반인들도 포토샵을 사용하고 일러스트레이터를 활용한다. 그들과 엇비슷한 수준으로 디자인 툴을 사용하고, 엇비슷한 수준의 결과물만 만들고 있다면 디자이너로서의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도구의 쓰임새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도구가 바뀌면 그에 따라 결과물에 대한 기대수준도 바뀌게 된다. 인정받는 디자이너가 되려면 도구가 가진 특장점을 잘 활용하여 그 기대 이상을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posted by 훈샘 : http://brandesign.tistor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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