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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이야기/건축

드라마 '개인의 취향' 속 '상고재'와 '삼호당'


     우리나라 전통가옥과 서양식 주택(양옥)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다양한 주택문화와 급속하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건축환경으로 인해 무엇이 전통이고 아닌지, 무엇이 서양적인 것이고, 무엇이 동양적인 것인지, 무엇이 한국적인 것인지 구분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더 나아가 무의미해져 굳이 그런 것을 구분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어 가는 듯 하다.  '개인의 취향'이라는 드라마 속 '상고재'라 불리우는 한옥을 보며 과연 '편리함이나 인간의 욕구 충족만 보장된다면 다른 가치들은 무시되어도 좋은 것인가?' 혹은  '과거의 것은 불편하기만 한, 개선과 혁신의 대상일 뿐인가?'하는 질문을 떠올리게 되었다. 

드라마 '개인의 취향' 속 한옥 '상고재'

드라마 '개인의 취향' 속 한옥 '상고재' (재는 '材'가 아닌 '齋'로 쓰여야 할 듯)

(이미지 출처 : http://ent.jknews.co.kr/article/news/20100412/7033673.htm )

      드라마 속의 주된 배경이자 중요한 사건발단의 요인 중 하나는 '상고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개량한옥이다. 툇마루와 중정(집안 건물 사이의 마당)의 개념이 남아 있는 '상고재'는 늘상 드라마에서 나오는 아파트나 고급주택의 거실, 아니면 상류층과의 대조를 위해 소박하게 표현된 스튜디오 속 한옥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전달한다. 안과 밖이 공유되는 공간, 종이 한장으로 그 용도가 구분되는 공간, 방 밖의 풍경이 고스란히 방안으로 스미는 듯한 나무의 질감은 이제껏 드라마에서는 그다지 쉽게 볼 수 없었던 모습이라 생각된다.

솔약국집 아들들의 배경 중 하나였던 개량한옥

보편적으로 드라마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한옥은 검소함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이다.

(이미지는 '솔약국집 아들들'의 한 장면)

 
드라마 '개인의 취향' 상고재 세트

이제까지의 드라마 속의 개량한옥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상고재 세트

(이미지 출처 :
http://www.tvreport.co.kr/main.php?cmd=news/news_view&idx=43009 )

     극에서는 상고재의 분위기와 대립되는 공간의 개념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한창렬과 김인희의 신혼집이 나오는 듯 하다. 번화한 도심의 야경이 펼쳐지는 거실, 높은 천장, 여유있는 공간에 세련되게 마감된 인테리어와 고급스런 가구들, 보통사람들이 부를 꿈꾸며 상상하는 거주공간이 그러할 것이다. 이 공간은 주위와는 완벽하게 단절된 공간이다. 개인의 사생활이 철저하게 보장될 듯한 이 공간은 현관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바꾸기만 하면 이 공간을 공유하던 사람마저 진입할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린다. 반면 상고재는 대문을 밀기만 하면 다시는 마주 대하기 싫은 인물도 발을 디딜 수 있는 공간으로 표현되고 있다.  
  
드라마 '개인의 취향' 중 신혼집의 김인희

드라마 '개인의 취향' 중 신혼집의 김인희(왕지혜 분)


     드라마 속 '상고재'의 중정 가운데 심기운 나무를 보자마자 순간적으로 머릿 속을 스치는 사진 한 장의 이미지가 있었다. 실내에서 중정의 나무를 향해 촬영된 건축가 승효상 선생님의 '수졸당(守拙堂)'의 사진이었다. 방안에서 촬영된 수졸당의 중정 이미지는 좁은 공간일지라도 인공적인 건축물과 자연을 소통시켜려 애쓴 건축가의 기지를 느끼기 충분했기에 신선함으로 기억에 남아 있었다.

승효상 SEUNG H SANG (양장)
국내도서>자연과 과학
저자 : 승효상
출판 : 건축과환경 201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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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사유의 기호
국내도서>예술/대중문화
저자 : 승효상
출판 : 돌베개 2004.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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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개인의 취향'속 '상고재'의 중정

드라마 '개인의 취향'속 '상고재'의 중정 이미지


승효상 '수졸당' 사진 무라이 오사무

승효상 '수졸당' (사진 : 무라이 오사무)


     수졸당은 서울 강남에 자리잡은 건축물이다. 위 이미지가 연장된 정취있는 한옥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한옥의 이미지로 보이는 사진과는 달리, 중정의 이미지만 일부 차용한 양옥인 수졸당은 전통한옥에서 친근하게 느껴지는 투박한 나무의 이미지는 찾아보기 힘든 현대적 건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정을 향해 열려있는 거실은 실내공간의 확보를 위해 시멘트벽으로 외부공간을 막아놓은 여타 건물들과는 달리 전통적인 한옥의 대청마루를 연상시키며 시각적 여유를 부여함으로써 정서적 안정감을 선사한다.       
수졸당 평면 스케치

학동에 위치한 승효상 선생님의 '수졸당' 평면 스케치


     이러한 거주공간이 시골이나 중소도시가 아닌, 지가가 상대적으로 높은 서울 강남에 만들어졌다는 것은 수졸당의 공간적 의미를 한층 더 가치있게 한다. 건물의 효용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가능한 땅 위의 많은 면적을 실내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실내공간을 단 몇cm라도 늘리려 안간힘을 쓰는 상황에서 토지의 많은 부분을 중정에 할애함으로써 사유의 폭을 넓히고자 한 건축가의 내공과 더불어, 전반적인 건축 세태에 반하는 건축가의 컨셉을 수용한 건축주의 내공 또한 결코 만만하게 느껴지지 않는 존경스러운 부분이다. 

     잠시 딴 길로 새어보자. 실제 '수졸당'이라 이름 붙여진 전통가옥은 경북 안동에 위치해 있다. 산등성이에 위치한 원조 수졸당은 퇴계이황의 손자 동암 이영도와 그의 아들 수졸당 이기의 종택이라 한다. 이 수졸당은 17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위치한 수졸당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위치한 수졸당

(이미지 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kor/hanok/info/hanok_frame.jsp?cid=664999 )
(참고 자료 :
http://blog.ohmynews.com/dima0306/283626 )

     드라마 상의 개량한옥인 '상고재'의 이미지는 서울 종로구 팔판동에 자리잡고 있는 '삼호당'과 훨씬 더 유사하다. 'ㅁ'형태로 중정을 둘러싼 한옥 건물은 한국적인 정취와 서정적인 소박함을 느끼게 한다.
     발을 방에 발을 들이지 않고도 여러사람이 편안하게 앉아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환경으로서의 열린 공간이라는 특성과 더불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에 있어서도 열린 공간이라는 한옥의 고유한 특성을 잘 보여주는 예가 된다.

종로구 팔판동의 '삼호당'

종로구 팔판동에 위치한 개량한옥 '삼호당'

(이미지 출처 :
http://www.makehopecity.com/?p=4809 )
 
종로구 팔판동의 '삼호당'

삼호당에서 펼쳐진 현대무용 공연

(이미지 출처 :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altx124&folder=2&list_id=10145842 )

     늦겨울 정도에 촬영된 듯한 영상에서 '상고재'에 거주하는 이들의 한기가 느껴진다. 우리나라의 전통가옥은 바깥공기와 집안의 공기가 한데 얽히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서정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한옥에서 살아가고자 한다면 계절의 변화에 따른 온도에 적응하며 살겠다는 가벼운 각오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벼운 각오라고는 했지만, 추위와 더위를 피하는 것이 주택의 가장 큰 효용가치 중에 하나란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공간을 소유한다는 데에는 가족의 동의와 더불어 나름의 결단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여름엔 좀 덥게, 겨울엔 좀 춥게 지내는 것이 건강의 측면에서나 생태적으로 더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까지 그런 생각을 강요하기엔 좀 가혹한 감이 없지 않다.  
   
     사람은 집을 만들고 집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공간에는 그 공간을 점유하거나 공유하는 사람들의 인품이나 개성이 반영되는 것이 인지 상정일 것이며, 공간에 의해 그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 또한 변화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시멘트 벽으로 외부와 차단된 한정된 공간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소통하며 사유의 개념을 확장하는 열린 공간을 속에 살 수 있기를, 트인 공간의 여유만큼이나 이웃 간의 소통도 여유 있기를 드라마 속 개량 한옥을 계기로 잠시 꿈꿔봤다.* (posted by 훈샘 : http://brandesign.tistory.com )
 

P.S.
경직이 느껴지는 이민호의 연기와 살짝 오버하는 듯한 손예진, 아무리 봐도 연상연하 커플의 티를 벗을 수 없는 둘 사이의 어색함과, 게이라는 억지스런 설정, 그리고 너무나 길게 이어온 듯한 오해가 극의 자연스런 흐름을 방해하고 있지만, 한옥의 가치, 좀 더 확대 해석한다면 드라마에서는 찾기 쉽지 않은 전통의 가치를 대중적으로 재고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드라마를 응원하게 된다. 다들 좀 더 분발하여 가치있는 드라마라는 평가와 함께 대중적인 인기도 좀 더 누리길 바란다.    

한국의 건축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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